경술국치 100년 학술대회 후기 기억의 재기억

한국근현대사학회 '근현대사 100년 10대 사건' 조명
잊지 못할 역사, 그 기억·해석의 변화…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8/h2010082321130386330.htm


한철호 교수님 말씀대로 한국일보에 학술대회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올해는 근현대사에 있어서 뜻깊은 사건들이 돌아오는 '꺾어지는 해'라 역사교육과에서 공부하는 나로서도 그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한국병탄 100년을 맞게 되는 2010년은 근현대사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일 양국 구성원 모두에게도 의미 있는 해가 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제의 한국 강점 이후 100년 간의 근현대사를 10개의 테마로 나누어, 100년간의 근현대사를 당시 구성원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변용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대충 일정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제1부] 민족해방투쟁의 역사 어떻게 기억되었나!

1주제 1910년 한국병탄 - 한국근현대사 모순과 파행의 근원 - 한철호(동국대)
2주제 1920년 봉오동·청산리전투 - 독립전쟁의 시발점 - 신주백(연세대)
3주제 1930년 한국독립당 - 정당정치의 기원 - 김희곤(안동대)
4주제 1940년 한국광복군 - 독립전쟁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무장부대 - 한시준(단국대)

[제2부] 분단과 민주화의 역사 어떻게 기억되었나!

5주제 1950년 한국전쟁 - 동족상잔과 냉전의 비극 - 장영민(상지대)
6주제 1960년 4.19혁명 -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민주주의 - 이창언(고려대)
7주제 1970년 전태일분신사건 - 고도성장 속에서 사람의 존엄성을 생각하다 - 임송자(성균관대)
8주제 1980년 광주민중항쟁 - 민주화의 촛불을 되살리다 - 김영택(국민대)
9주제 1990년 한러수교 - 러시아 외교와 한국 - 김종헌(동국대)
10주제 2000년 남북정상회담 - 21세기 한반도의 미래 - 이규태(아세아문화연구소)

100년이라는 방대한 역사를 하루에 끝내려다 보니 발표자 1분당 발표시간이 20분으로 제한되기도 했다. 더 많은 내용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내용과 해석들을 알게 돼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 관심을 끌던 주제는 1부 앞의 세 주제였다. 1910년대에서 30년대까지의 세 주제는 기존에 몰랐던 지식과 새로운 해석을 들을 수 있던 발표였다. 특히 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다 보니 한 교수님의 1주제가 가장 인상깊었다.(물론 대개의 발표가 그렇듯 첫 발표가 인상깊지만)

한 교수님은 먼저 한국병탄을 20세기 한국근현대사의 모순과 파행의 결정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한국병탄에 있어서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일제가 병탄 조약의 명칭을 정하는 데 고심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제는 조약의 명칭을 정하는 데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倂呑[병탄]'은 한국을 강점했다는 침략적 성격이 너무 드러나서 차마 사용할 수 없었고, 두 나라가 형식적이나마 동등하게 합친다는 의미의 '합방'도 스스로 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병합'이란 문자를 새롭게 고안해냈다. '병합'은 한국이 아주 '廢滅[폐멸]'되어서 일제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을 명확하게 하되, 그 어조가 너무 과격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 용어였다. 이처럼 일제는 한국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강점한 진실을 은폐하되 그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야말로 간교하게 '병합'이란 용어를 새로 고안해냈던 것이다.(1주제 발표문 '1910년 한국병탄 - 한국근현대사 모순과 파행의 근원' p9)

나 역시도 한국병탄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사실에는 무지했다. 솔직히 국치 100년을 맞는다고 말은 많이 오갔지만 정작 국치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 사용에 있어서도 무관심했던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동안 국치에 대한 미래의 전망과 같은 대형 담론에 치우친 나머지 국치에 대한 기초적 접근과 해석에는 미비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 교직을 잡게 된다는 확신은 없지만, 만일 내가 가르치는 입장에 선다면 아이들에게 이러한 기초적 사실 만큼은 알려주고 싶다.

한철호 교수님은 국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는데, 바로 국치일은 '국민주권 선언의 날'이라는 것이다. 즉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8월 29일은 나라를 빼앗긴 수치스러운 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며 주권은 우리 동포 전체에게 귀속된다는 국민주권 개념이 발현된 날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한 교수님은 집권세력의 실정(失政)을 일제의 무력 침략과 함께 비판한다.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집권세력의 총체적 부실과 위기관리 능력의 부족 역시 국권 강탈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황제권과 황실의 강화·유지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권과 민권확대를 통한 국민통합과 부국강병을 추진하지 못했던 집권세력의 실정은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셨다.

공감이 가는 것이 고종을 위시한 집권세력이 외교나 다른 분야의 개혁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은 전근대적 정체성을 완전히 탈피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 근대라는 것이 당시 서구에서 지배적인 개념이었던 제국주의로의 악화일로가 아니라, 민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외세에 맞서 부강하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황제의 전제적 권한이 보장되는 근대로 나아가며 개혁을 추구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민권확대를 추구하던 독립협회의 의회 설립 활동은 좌절되고 탄압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진행했던 개혁의 내용도 실상 황실재정과 황제 직속의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진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제 강점 당시의 집권층 비판은 일제의 식민 지배 정당화 논리와는 별개의 대상이다. 오히려 그들의 실정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양산했다는 한 교수님의 해석이 적확하다 하겠다.

하루 동안의 짧은 일정으로 근현대사 100년을 속성으로 마쳤지만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은 더 많은 노력으로 채워 넣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서 한국 강제병탄 100년을 맞이하는 이 때, 병탄의 역사적 해석의 보완은 물론 새로운 100년에 대한 담대한 구상과 도전, 새판짜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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